정치 테러 조직원들의 자리 바꿈

March 29th, 2009

정치 테러 조직원들은 이동을 한다. 이사 다니는 것처럼.

새로운 먹이를 찾아 다니는 것처럼. 물론 보상을 받기 위하여 편한 자리도 옮기는 경우처럼.

이들이 자리를 이동하면 다시 그 자리는 이들의 숨은 동료들에게 물려진다.

그들이 사라졌다고 안전하여진 것이 아니고 더욱 위험한 더 준비된 정체를 숨기고 있는 자가 그 자리를 매우는 것이다.

수십년동안 정체를 숨기고 자리를 지키며 범죄 활동을 하는 자들도 다수이다.

살인과 탄압과 범죄를 돈벌이로 삼는 이런 자들로부터 자신들을 구함은 당연한 의무인 것이다.

당신들에게 돈을?

March 23rd, 2009

2009.03.20 수일전 본인은 작년에 있엇던 사건중 공작원들이 본인 가족에게 이장한 거짓말을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인을 미국으로 떠나게 하여주면 본인이 돈을 주겠다는 말을 하였다는 것이다. 무슨 목적으로 이자들은 이런 공작을 계속하는 것일까? 무슨 또다른 공작을 본인 가족에게 하고 있는 것일까?

유인책은?

March 14th, 2009

벨기에 교회 안에서 본인을 해치려던 일이 있은후 본인은 다시 애틀랜타로 돌아갔다. 그리고 석달후 911테러가 발생하기 전 본인은 다시 타국으로 여행을 하여야 하였다. 그들은 본인이 왕복항공권을 구비한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은 미국에서 본인을 유럽으로 유인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위장하기 위하여 어떤 공작원들을 동원하였을까?

무서운 세상인 것이다.

의사가 세균 테러 조직원인 것처럼

종교인을 가장한 공작원들이 활동하는 것처럼

언론인 방송인 위장을 한 자들이 테러범죄 활동에 참여하는 것처럼.

본인이 다시 테러공작원들의 활동 근거지로 사람들이 있으리라 하고 ê°ˆ 이유는 없었고…

항시 경계하여야할 자들의 활동이다.

병을 주는것

March 7th, 2009

진동에 의한 검물의 흔들림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 겅강을 해칠때

간첩의 협박

March 4th, 2009

간첩중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거나 마음대로 위협이 되지 않는 경우 표출되는 그들의 행동의 특이성 중 하나는 자신이 간첩이라는 것을 직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화가났던 벨기에 장학생 박교수

March 2nd, 2009

박교수 지금이야 박교수지만 당시는 박사과정 학생

본인을 진과장의 집에 유인하였던 인물이다. 벨기에 장학금을 받았다던 똑똑한? 인물

어느날 본인 거처에 와서 의자에 드러누워 놀고 있던 박은 본인의 집에 들린 의대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미국인 친구로 체격이 조금큰 친구였다. 중요한 점은 약간의 대화가 있었고

친구가 가고난후 박은 화가 나 있었다 소리를 지른것이 아니고 조용한 ë¶„ë…¸ 긴장 눈굴림…

무슨 이유로 박은 본인 친구의 방문후 둥굴거리고 놀던 태도에서 화난 태도로 바뀌었는가?

도대체 그의 머리에는 무었이 굴러 들었나? 본인 학교 친구때문이였나? 아니면 본인때문이였나?

박은 진과장의 집으로 유인하고 벨기에 현지인 앞에서 본인을 반미 공산주의자라 선전하였다.

본인이 한 말이란 왕정과 공화정의 정치 안전성 비교였다. 교묘히 그자는 왕정에 관한 말을 비약시켜 공산주의로 둔갑시키는 재주를 순간에 보여주었다.

PS:박은 본인에게 자신들이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타진한 적이 있었다.

수없이 해치려던 죽이려던 해하던 시민에게 정보원이 될 의향을 타진하는 것은 전혀 그 의도를 이해할수 없는 행위인 것이다. 무었이 이들의 진실한 숨은 목적이였을까?

박이 있을당시 배양홍과 진과장 교회는 Sablon에 있었다.

Sablon교회 자하에서 본인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친절한 사람들 중에서 본인은 후일 본인을 죽이려 한 일과 괸계된 세력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Tervuren으로

교회 지하에서 그런 인물?들을 대면하였을 줄이야…

PS: 본인을 납치 하려던 일들이 실패하고 한동안 소강상태 전의 동료는 밀입국 하였다던 중국인과 동행하며 박물관 옆 호수가에서 자신이 중국 흑룡강성등을 여행하엿다며 말을 시작하여고 중국인에 관하여 떠들어 대기 시작하였다. 이자가 본인에게 교묘히 전한것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비참하게 죽을 운명은 비참헤게 죽는다는 것이였다. 이 중국인은 교회에서 말지 않은 지점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한국인들과 밀접한 장소였다. 또한 이자는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주며 본인과 연락하려 하였다. - 그후 본인은 정보 소집단과 중국인 등이 동원된 세균 테러에 노출 되었고 노길상과 전화 연락을 하였다. 그리고 노길상을 통하여 본인이 전혀 알지 못하던 본인의 주변 상황에 관하여 알게 되었다. 무슨 이유로 노길상은 그런것을 알려주었을까?

이세상에는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속에 숨어들어 사람들을 í•´ì¹  궁리나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애틀랜타에서

March 2nd, 2009

본인이 애틀랜타라고 쓸때는 주로 노르크로스나 도라빌을 말하기도 한다. 반기문의 영사가 본인을 위협하기 위하여 나타났던 여관 근처에는 다 무너진 집이 있었다. 서울이였다면 사서 본인이 하나 하나 고쳐가며 복구를 하였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서 본인은 언재나 그것이 수일내일지 수개월 후일지 모를 나그네 신세였을뿐 아무런 것도 할수 없는 처지 였다. 아직도 본인이 본인 손으로 사보거나 지어본 집이 한채도 없다.

경제적으로 이룬것이 없다. 그들을 피하느라 그들 앞에서 생존하느라 그들과 싸우느라 이런 처지가 되었다.

하나님이 아실것이니 무었을 더 ì“°ëž´ ì–´ì°Œ 하였건 아직도 죽지않고 꺽이지 않고 살아서 이 글을 ì“°ê³  있다. 다 하나님 뜻이리라…

요사이는 세계 각국 한국 포함하여 여러 나라 여러 도시 집값들을 비교하여 보곤한다.

물론 싼 집들…

사는 주거 환경은 나라마다 도시마다 차이 특이성이 있다.

나의 남은 인생을 보낼 최소 규모의 집은 어떤 크기여야 할까?

돈이 없으니 작아야 할것이고…

교통이 편하여야 하지만 도심은 비싸서 살수 없을 것이고…

근육이 없으니 안전하여야 할것이니 심심풀이로 골라보는 것도 쉽지가 않다.

애틀랜타에서는 노르크로즈 뒷편에 가면 매우 좋은 집들이 숲속에 있엇다. 물론 얼마하는지도 모른다.. LA의 도심 거주지는 금값이였고… 물론 골목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벨기에도 지금은 많이 비싸 졌을 것이고 그때도 비쌌는데… 빠리나 런던또한 적은 액수라 할수 없다.

서울도 엄청 비싸다. 가서 보지도 못하였다.

사람을 죽이러 다니는 사람들은 국가에서 얼마씩 줄까? Caleb은 강남의 집한채를 자신이 받을 보상으로 말하였는데 음모가 실패하여도 돈을 받았을까? 하기사 세균테러는 성공하였으니 큰 실패라 할수 없지. 중국인들이 대신 일을 중국인이라는 것을 고의로 내세우며 하였지만. 그후에도 그가 브뤼셀에서 활동한것으로 ë³´ì•„ … [Caleb 부부는 연세대학 출신이라 한다. 물론 그런 일반적인 것도 그들은 거짓말로 감추고. 심지어는 그들이 만나게 된 것도 거짓말로 전하는 것이였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출신 대학까지 숨기는 자들. 둘다 연대 출신 커플로 유명하였다 그의 동료 공작원이 전한다. 이들은 무었을 구하고자 이러나?]

자신들의 출세를 위하여 정치 공작을 위하여 사람 죽이러 다니며 -번제라 외치며- 납치 하러 다니며 해하러 다니며 돈버는 자들이 편히 사는 세상이라니 살면서 더욱 놀라운 것을 배운다. 그리고 그들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정치세력의 뻔뻔함에는 더욱 놀랄뿐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니 말이다…

기억

March 1st, 2009

web주소는 너무 기억하기가 어렵다. 물론 쉬운것도 있지만

http://users.skynet.be/bs969978/ 

http://public.fotki.com/Oppemkdc/archives_2000-2005/korean_church_of/

사진하면 많은 기억이 난다. 작은 꽃봉우리나 싹을 찍기 좋아 한다. 가진 카메라로는 잘 되지 않는다.

사람은 찍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본인에게는

물론 예외도 있었으니 아기와 그의 부모 얼굴을 함께 찍는 것이다. 때로는 너무나 놀라우리만치 닮은 두 얼굴을 발견할때가 있다. 그 아기의 얼굴이 서서히 커가면서 그의 부모 얼굴을 계속 닮게 될까?

사진이란 때로 사진만 봐서는 알수없는 이해할수 없는 내용을 ë‹´ê³  있기도 하다…

허약한 자는 죽어야 한다.

February 22nd, 2009

어디서 많이 듣던 구호처럼 들리는군.

교회 장로라던 노길상이 수차의 범죄 시도 실패이후 본인에게 수차 교회안에서 조롱하며 전하던 말과 한 쌍을 이루겠다.

본인을 노길상의 도움을 받아 위협하던 미국으로 이민 갈것이라던 차관급 대사 최대화가 자신의 부하 들 앞에서 위협하던 일을 생각나게 하여준다.

2009.02.22 광화문 교보로 가는 길.

이번에 다 정리하여야 한다고.

조금 우수운 이야기

February 8th, 2009

오랫만에 우수운 이야기 하나 써본다.

아주 오래전이다 벨기에 모 카톨릭대 의대 교수가 와있던 시절…

열차를 타고 루방에 가던길 열차안에서 귀여운 여학생? 대학도시였으니.. 초코랫을 하나 건낸다. 본인은 그냥 사양하고 내리고 나서  안것은 발랜타인 날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미안 했는지…

초코랫을 받은 것으로 해두자…

이번 14일 발렌타인 날로 표시가 되어있다. 이제는 받을 일도 없지만…

본인을 해치려던 자들 속에서 책만보던 시절의 일이었다.

PS: ì–´ì œ 오늘은 나치와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Pope John Paul II하에서 작성된 “We remember: A Reflection on the Shoah”등에 관하여 기록하고]그리고 염소 치스 먹은 유다인들이 냄새가 난다던 자들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다. 아침 컴퓨타는 커지지 않았고… 성공적으로 한대 또 부셨다. 실력이 상당한가 보다… 물론 술먹고 취한척하며 옆에서 본인에게 욕하던 자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어린시절 교육 받았던 볼세비키들이 하던 악한 짓이라는것도 생각하여 보았다.

집앞 기둥에는 개?가 먹던것을 토해 놓았다.